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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여주는 여행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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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독여주는 여행에세이
  • 왕인정 기자
  • 승인 2012.06.13 2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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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고, 피폐해진 정신을 위로해주는 여행에세이들.

쉬고 싶은 열망과 떠나고 싶은 충동은 언제나 내 마음을 배회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시간이 나면 어떻게 쉬어야 할지, 어디로 떠나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이럴 때 읽으면 도움이 되는 책들이 있다.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고, 피폐해진 정신을 위로해주는 여행에세이들.

작가 자신도 현실의 한계에 부딪혔던 것인지 구절구절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 책들은 굳이 떠나지 않고도 작가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준다.


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시코쿠를 걷다>

최성현, 2010년, 조화로운삶

가까운 나라 일본에 이런 순례 길이 있다니.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시코쿠 순례 길’을 처음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산티아고 길만큼이나 오래되고, 산티아고 길보다 500킬로미터 정도 더 긴 순례자들의 길, 이 길에 있는 88개 사찰을 차례로 참배해 하나의 원을 완성하면 한 가지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그렇다고 순례자들이 부자가 되려고 이 길을 걷는 것 같지는 않다. “스트레스가 심해요,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그런데 여기 와서 며칠 걸으면 그게 씻은 듯이 사라져요. 신기하지요!” 작가가 만난 한 순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길은 ‘돈’보다 ‘쉼’이 더 절박한 사람들이 걷고 있는 것 같다. 작가도 삶 전체에 활기가 부족해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고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시코쿠 순례 길만의 독특한 문화와 정신, 작가 특유의 색채로 표현된 자연의 경이로움 들을 읽어내려 가다보니 나도 작가와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 달씩 긴 시간을 내어 순례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여행만큼이나 큰 위안이 되어줄 책이다.

 
밑줄 그은 문장

69~71페이지/ 순례 내내 나를 사로잡은 감정은 대자연에 대한 감사였다. 나는 들과 산이 좋았다. 그 안의 강, 바람, 나무, 풀, 새, 나비, 해와 달과 별이 좋았다. 그러므로 나는 지구가 좋았다. 가네코 미스즈라는 시인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던 모양이었다. “엄마 모르는 / 풀씨를, / 몇 천만의 / 풀씨를, / 땅은 혼자서 기른다.
풀이 파릇파릇 / 무성해지면 / 땅은 보이지도 않는데.”

270페이지/우리는 지구라는 미술관에서 24시간 화가이자 작품이다. 우리는 의식을 하든 못하든 끊임없이 지구에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고, 순간순간 한 폭의 그림으로 존재한다. 그림을 망치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면서. 그러므로 우리는 자주 자신의 삶을 돌아볼 일이다. 나는 지금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그림으로 살고 있는지.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1997년, 열림원

90년대 말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환상의 나라 인도로 향했다. 나도 그들 중 한 명이다. 지금도 여전히 인도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시작점이 되고 있는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이 10년간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겪은 감동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가 썼듯이 “인도인들은 짤막한 말로 사물의 핵심을 잘 찌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인도 사람들의 “재치 있는 순발력과 번뜩이는 통찰력”에 감동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의 말은 마치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나도 인지하지 못한 생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인 것 같다. 때때로 다시 책장을 펼치게 되는데, 그때마다 다시 인도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쳐 오른다. 그곳에 가면 생을 통달한 성자가 허풍쟁이 차루의 모습으로 나타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줄 것만 같기에.


밑줄 그은 문장

87페이지/ 강물은 해 저무는 모퉁이를 향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누가 말했었다. 가슴에서 마음을 떼어 강에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면 고통도 그리움도 추억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101페이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원하지 말라. 일들이 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 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 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이 평화로울 것이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001년, 김영사, 공지영


이 책을 읽게 된 데는 공지영이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그녀가 그리 오래도록 찾아 헤맨 목마른 영혼의 해답’이라는 부제에 이끌린 이유가 크다. 정확히 말해 책은 그 해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그 답을 찾아 끊임없이 사색하게 만든다. 특히 중세의 철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아르정탱, 베네딕트 여자 봉쇄수도원’이 인상적인데, 스스로를 가두고도 ‘테러블리 해피’라고 말하는 수녀님 덕분에 ‘자유’의 개념을 재정립하게 되었다. 몸은 갇혔으되, 영혼은 해방된 상태,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의 아름다운 풍경, 수도원의 엄숙함,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가의 종교적 성찰들이 담긴 이 책은 어쩌면 이 세상 전체가 수도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밑줄 그은 문장

83페이지/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166페이지/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내가 스스로 행복해지기 전에,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 놀랍게도 행복에도 자격이란 게 있어서 내가 그 자격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도 할 서튼처럼 3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고 돌이키기 힘든 아픈 우두자국을 내 삶에 스스로 찍어버린 뒤였다. 그 쉬운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해 청춘과 상처를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괴테의 말대로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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