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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의 포천, 새롭게 비상하다 - 포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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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의 포천, 새롭게 비상하다 - 포천의 역사
  • 길봉진 기자
  • 승인 2013.04.26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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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의 역사

 

포천지역은 선사시대부터 하천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발달해 왔다. 그러나 지역 고유의 지명은 삼국시대에 와서 백제와 고구려의 영역에 속했을 때 비로소 정해졌다.


그 이름은 ‘마홀(馬忽)’ 즉 물골이라는 뜻으로 물이 많은 고을을 의미한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견고한 성(城)이 많다고 하여 견성군(堅城郡)으로 불리다가, 고려시대 도성의 배후지로써 포주(抱州)라는 지명이 사용됐다. 그리고 현재의 지명인 포천(抱川)이란 지명은 조선 태종대에 이르러 사용된 지명이다.


조선시대 지방제도는 태종 13년(1413)에 팔도 체제가 확립되고 군현의 영역과 이름이 조정되면서 고려시대의 문란했던 지방 행정 조직의 개편이 시작됐다. 이 시기 주로 논의된 군현의 명칭 개정은 고려 후기 이래 무질서하게 승격됐던 고을의 격을 가구와 토지 수에 따라 재조정하는 것이고, 부사(府使:도호부사-종3품) 이하의 군현에 주(州)자가 붙은 고을 이름을 다른 글자로 대체해 개정했다.


이와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태종실록』에 태종 6년(1406) 7월 25일 군현의 이름 개정과 등급 재조정에 대해 “외방 고을의 등급과 칭호가 같지 않으니 이를 고쳐 지방관의 격을 같게 조정해야 한다”는 이조의 건의가 있었다.


이후 태종 13년 10월 15일 각도의 단부(單府: 종2품관 고을 이외의 지명에 주(州)자를 가진 고을을 말함) 고을을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감무를 현감으로 고치게 하였다. 또한 이때에 군? 현의 이름 가운데 주(州)자를 쓴 것은 모두 산(山)자, 천(川)자로 고치게 했다.


이 개편으로 모두 60개 군현의 명칭이 개정됐으며, 조선 태종 13년 10월 15일  포천지역에 처음으로 현감을 파견하고 지명을 포주에서 포천으로 개칭했다.


이후 광해군 10년(1618) 북관대로의 방어를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포천과 영평이 합쳐져 영평도호부로 승격됐으나, 인조 1년(1623)  “영평현 사람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다시 분리됐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영평현을 병합해 군으로 승격됐으나 1896년 다시 분할됐다가 1914년 영평군을 통합했다.


1973년에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천면 탑동리가 양주군 동두천읍으로 분리, 12개면(1출장소) 87개리로 구획(대통령령 6452호)됐으며, 10년이 지난 1983년에는 청산면이 연천군으로 연천군 관인면이 포천군으로 편입돼 13개(2읍, 11면) 88개리로 개편됐다.


2003년에는 도농복합시로 승격, 포천읍이 포천동과 선단동으로 분리돼 지금의 행정구역 14개 읍면동(1읍, 11면, 2동)이 확정됐다.


태종13년(1413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개정된 60개 군현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곳은 포천시를 포함해 전국에 19개 시?군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렇듯 포천시는 유서 깊은 6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올해는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문화를 지닌 포천시 탄생 600년이자 시 승격 10주년이 되는 매우 뜻 깊은 해로써 포천시는 올해를 포천 발전의 새로운 원년 및 도약의 계기로 삼아 새롭게 비상하고자 한다. “600년의  역사도시, 한반도의 중심도시 포천”의 거주하고 있는 우리 모두는 이러한  위상에 걸맞게 한 마음 한 뜻으로 무궁무진한 포천의 발전을 위해 힘차게 정진해야 할 때이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보다 더 자랑스러운 포천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항상 가슴속에 지니길 기원 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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