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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위무하는 요리 이야기를 다룬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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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위무하는 요리 이야기를 다룬 책
  • 왕인정 기자
  • 승인 2012.06.13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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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너머로 바라보는 관계 맺기에 대한 통찰

얼마 전부터 요리를 소재로 삼은 일본 책과 영화에 부쩍 흥미가 간다.

특히 최고의 화제작 <심야식당>을 읽으면서부터 관심이 증폭된 듯하다. 얼마나 인기가 있으면 회사 근처의 일본라면집에선 <심야식당> 1권에 나왔던 ‘어제의 카레’ 메뉴도 내놓았었다. 한 달 만에 메뉴를 접긴 했지만, 그 식당에 들어선 사람들 중 <심야식당>을 읽은 사람들은 모두 한 번씩 ‘어제의 카레’를 맛보았으리라. 메마른 도시인들에게 음식이란 마음의 허기까지 채우게 만드는 위로와 치유의 감성으로 다가온다는 얘기다. 삶이 복잡하고 바빠진 만큼, 정성 가득한 요리는 느리고 단순한 감성으로 더 큰 울림을 남긴다.


1. 음식 너머로 바라보는 관계 맺기에 대한 통찰
-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요시나가 후미오 <어제 뭐 먹었어?>

▲ 아베 야로의 <심야식당>

▲ 요시나가 후미오 <어제 뭐 먹었어?>

그러다 발견하게 된 요시나가 후미오의 요리만화 <어제 뭐 먹었어?>. 서양골동양과자점의 작가답게 주인공 남자들이 게이다. 집에서 가정식 요리를 해먹는 게 인생 최고의 기쁨인 43세의 독신 변호사 카케이 시로는 6시 칼퇴근을 위해 고단위 집약적 업무를 추구한다. 이유는 오로지 집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동거인 39세의 미용사 야부키 켄지가 밑반찬처럼 등장한다. 그래서 매 에피소드마다 시로의 가정식 요리 레시피가 등장하고, 요리를 중심으로 간단한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형식이다.
<심야식당>이 여러 인간이 모이는 장소이기에 좀더 따뜻한 휴머니즘의 냄새를 솔솔 풍겼다면, <어제 뭐 먹었어>는 사회적 관계를 어색해하는 개인의 내밀한 심리에 집중한다. 가정식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상황이 그것을 말해준다. 게이라는 소수자적 컴플렉스로 가족과 사회와의 불화를 예단한 채 경계를 짓는 주인공이 음식을 통해 마음의 고단함을 풀어내는 방식인데, 그것이 단순히 게이의 입장이 아니라, 영원히 철들지 않는 독신들의 심경을 대변해주는 듯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사회에 지치고 정에 굶주린 인간들은 심야식당의 음식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게 되고, 자기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싶었던 게이남은 그렇게 나이를 먹고도 어리숙하게 사람들과 엮이고 꼬일 수밖에 없는 거다. 아, 그런데 43세의 철없는 미중년 독신남의 심경에 완벽 공감대가 이루어지다니.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가? 철이 없다는 증거인가?
중요한 건 나이를 먹는다고 마음까지 어른이고 싶지는 않다는 거다.

2. 기억의 촉매, 맛은 시간을 뛰어넘어 그리움에게 달려간다.
- 이부키 유키 <49일의 레시피>,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 이부키 유키 <49일의 레시피>,

▲ 오가와 이토 <달팽이 식당>

<49일의 레시피>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요리를 주제로 한 소설은 아니다. 뒤늦게 만난 새 가족을 위해 평생 자신의 자식을 낳지 않은 채, 가족을 위해 살다 간 계모의 죽음, 그리고 그녀가 남긴 레시피를 계기로 가족들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여기서 레시피란 일종의 처방전이다. 남겨진 가족이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엄마의 사랑과 배려가 담긴 삶의 처방전. 물론 그 처방전에는 요리가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거의 초죽음 상태로 대면한 아버지와 딸에게 엄마의 맛을 떠올리는 라멘이 등장한다. 살아생전 엄마의 부탁으로 당분간 이 집에 일을 도우러 온 소녀가 만들어준 음식은 그렇게 따스한 엄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며 49일 동안 슬픔에 잠겨 있는 가족을 치유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달팽이 식당>은 그 자체로 치유의 레스토랑이다. 어느 날 모든 것을 잃고 완벽한 외톨이가 된 링고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향한다. 그리고 작은 식당을 연다. 정해진 메뉴도 없고, 받는 손님은 하루에 단 한 팀. 하지만 손님의 취향과 인품에 대해 철저히 사전조사를 한 후, 상황에 딱 맞는 요리를 내놓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작디작은 식당에 들르는 손님들은 행복감을 갖고 문을 나서게 된다. 그들의 행복감은 링고의 요리가 단순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으로 대체할 수 있게 격려하는 요리라니, 맛이란 어쩌면 시간을 뛰어넘는 마술과도 같은 것 아닐까?

덧.
위무 : [명사] 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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