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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공존할 때 불필요한 마찰은 생기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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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공존할 때 불필요한 마찰은 생기지 않을 것”
  • 변준성 기자
  • 승인 2022.03.2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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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포커스의 성남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 얼굴 인터뷰 시리즈⓺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김영일 장애인위원장

다가오는 61일 실시되는 제8회 지방선거가 대세이다. 항상 거론되는 이야기지만 지방선거는 지역주민의 대표자인 지방의회 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선거를 말한다.

여기에 참가하는 후보자들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발전을 위해 지역 정책을 수립하려 애쓰게 되며, 주민들은 선거에 참여해 가장 밀접하고 예민한 지역의 문제에 자신의 의사를 직접 투입할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현역인 경우, 임기 이후 다음 선거에서 얼마나 지역주민의 행복과 지역발전을 위해 활동했는지 평가받게 되는 것이고 가장 낮은 단계에서 정치를 시작하는 그들이 있어 풀뿌리민주주의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어느 때 보다 청년과 신인의 정치참여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김영일 장애인위원장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김영일 장애인위원장

결국 세대교체의 이름은 미래 대한민국 정치가 젊어지는 작은 양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모아지면서 3·9 대통령선거 말고도 이어지는 6·1 지방선거에서 이들 신인 정치인들에 대한 유권자의 알 권리와 지역의 새로운 인물의 탄생을 기대하면서 경기포커스가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 얼굴을 인터뷰했다.

시리즈로 펼쳐지는 경기포커스의 새 얼굴 여섯 번 째는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김영일 장애인위원장 인터뷰다. [편집자 주]

Q 나이, 학력, 경력(직업)을 소개해달라?

- 나이는 올해 50(49)가 되었구요, 요즘은 인생의 반을 무사히 살아왔다는 것이 저 스스로 나름 뿌듯하기까지 했으며, 학력은 고졸로 장애학생 전문 교육기관인 삼육재활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다양한 장애유형의 친구들과 초. . 고등학교까지 학년기를 삼육재활원에서 보냈다.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시는데 1992년만 해도 장애인식개선이 바닥이었을 때여서 그랬는지 일반 학교가 아닌 재활원에서 졸업을 했던 상황이라, ‘재활원에서 학교를 졸업했다하면 마치 좀 모자란 교육을 받은 것 같은 취급을 받기도 했다. 많은 편견과 오해? 의심? 뭐 등등의 시선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학창 시절에는 학생 전체가 장애가 있다 보니 모두 기숙사 생활을 했으며 중증의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생활하면서 다양한 장애 유형별 원하는 여러 분야의 사회적 욕구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당시 장애인이 취업하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들었던 시절이었는데 취업을 못 해 졸업을 하고도 거의 1년을 놀고 있었고 어렵게 어렵게 취업한 곳이 주물공장이었다. 업종 특성상 작업 환경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일하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인내가 부족함이 문제였는지 불과 6개월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퇴사 이후 우연히 당시 한창 유행 중이었던 컴퓨터 조립 딜러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컴퓨터가 기성품이 워낙 비싸다 보니 부품을 사서 직접 조립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조립을 원하시는 분들께 주문을 받아 부품을 직접 사서 조립 후 납품하는 일을 7년간 하다가 소프트웨어 개발과 웹 관련된 일로 전향해 1년여간 공부를 하고 20018월에 모두클릭이란 사업체를 설립하게 되었다.

그 당시 성남에서 장애인기업으로서 IT 관련 사업을 하는 장애인은 처음이었기에 많은 많은 관심과 배려로 사업체 운영은 순조로웠고 이렇게 시작된 사업에 장애인 4명과 비장애인 5명을 채용하고 회사는 큰 문제 없이 운영이 잘 되었다. 그렇게 8년간을 잘 운영하다 한 단계 더 올라가야 할 시점인 2008년에 리먼 사태가 터지면서 주 고객인 중소기업들의 연쇄적인 도산으로 홍보성이 강한 웹 쪽 일을 잘라내기 시작했고, 단 몇 달 만에 관리 고객의 90% 이상을 잃고 점점 경영이 어려워져 결국 수억원에 달하는 빚만 지고 2010년에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회사를 다시 세우기 위해 IT 관련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고 개발, 기획, 디자인, 서버관리 등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4년간 프리랜서로 활동을 하게됐다.

4년이 지난 후 한 장애인 관련 모임에서 학교 후배를 만나게 되었고, 여성 장애인인 그 후배와 의기투합을 하고 나의 경험을 토대로 버려졌던 모두클릭이란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하고 다시 회사를 세우게 되었다. 경험자로서 안정적인 사업체 운영을 위해 열심히 어드바이스를 하고 있으며 여성기업인증, 장애인기업인증, 소상공인인증, 소프트웨어 개발인증 등을 받고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며 청년, 여성, 장애인 등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창업 전문 교육과 쇼핑몰 가맹사업, 웹 에이전시 분야에서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Q 정치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 지난 2004년 리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장애인 중에 제 회사에 프로그래머가 이름을 올리게 되는 반가운 일이 있었고 그해 우리나라는 4연패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04년 리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에 출전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했었다.
2004년 리우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 대회에 출전하고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했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청와대로 올림픽 참가 선수들과 지원했던 업체 대표를 불러 오찬을 한 적이 있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대통령과 줄줄이 서서 인사를 하던 중에 내 차례가 와서 인사를 드리며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는데 대통령께서 허리를 굽히시며 두 손으로 제 손을 힘껏 잡아주시며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한 나라의 수장이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고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니 그간 장애 때문에 무시당해왔던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후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뉴스를 보고 내가 만났던 그 진솔하고 친근하고 겸손한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말에 여당 당적에 이름을 올리고 처음 성남지역 정치인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제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이후 2014년에 민주당에서 장애인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비례 1번을 받을 기회가 있었으나, 지방선거를 얼마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이 합당을 발표하면서 안철수 위원장이 제안한 공천 방식 중에 전국의 비례 1번은 무조건 여성으로 한다는 발표를 해 아쉬운 순간이 있었기도 했다.

당시 지역구에서 저를 믿어주시고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함께 받아 실망을 드릴 수 없었기에 제3의 당적으로 성남시 분당구()에 시의원으로 출마를 했으나, 초라한 성적으로 낙선을 하고 말았다.(솔직히 낙선할 것을 알았다.) 분당구() 지역구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당과 제1야당이 항상 선택받는 지역으로 낙선할 걸 알면서도 단언컨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했다.

Q 딱딱하고 복잡한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데 포부가 있다면?

- 평소 정치는 심플하고 유연해야 하고 시민과 함께하는 정책은 매우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생각한다. 선출직 공직자는 국민 또는 시민에 의해 대표로 일을 하라고 선출된 자리로 이런 자리에서 마치 신()이나 된듯한 권력을 내세우는 것이 너무 무례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저 사람 의원 아니야? 그런데 여기에 맨날 보이네? 안 바쁜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지역민과 가까이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늘 시민 곁에 가까이 있는 정치인, 귀를 열고 마음으로 듣는 정치인, 찐 친구 같은 정치인, 늘 똑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정치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부가 있다면 이란 질문에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그러나 제가 만약 성남시에서 당장 정치를 할 수 있다면 제일 먼저 장애인 자립, 창업, 일자리 창출, 발달장애인 성인기 교육에 관한 지원 조례와 중앙부처, 경기도완 싸워서 관련 예산을 확보해 장애인기업, 장애인가족기업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그로 인해 국내에서 성남시가 장애, 일자리, 창업 등에 활발하게 발전하는 독보적인 지자체를 만들고 장애 가족, 장애인 당사자, 비장애인, 대기업, 공기업, 성남시가 하나의 목표를 보고 함께 큰 성과를 이뤄내는 정치를 하고 싶다.

Q 장애인으로서 기업을 운영하기에 어려움은 없는지, 장애인을 대변하는 지역정치에 대한 소견이 있다면?

- 나는 2019년 당시 한 성남시의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자료를 준비하여 장애인 기관이 참여한 가운데 함께 한뜻으로 조례를 제안하였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성남시에 [장애인기업활동촉진지원법성남시 장애인기업활동지원 조례[시행 2019. 9. 16.] [경기도성남시조례 제3410, 2019. 9. 16., 제정]를 제정한 바 있다.

장애인으로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남시의회를 찾아 조례 제정에도 역할을 소화해냈다.
장애인으로서 기업을 운영하면서 성남시의회를 찾아 조례 제정에도 역할을 소화해냈다.

그러나 성남시는 이러한 조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기업에 대한 관심은 정말 미비했었고 현재도 관내 장애인 기업들의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부처와 지속적인 연계를 하지 않고 그냥 말로만 지원하는 조례 제정이었고 그야말로 탁상행정의 끝판을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생각한다. 다수의 의원들과 시의장, 장애인지원기관장, 중앙부처 산하 공공기관 재단법인 센터장님을 모시고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과 정책을 고민하겠다던 의원님들도 조례만 올려놓고 끝난 것이 매우 아쉽다.

내가 실제 경험했던 일로서 관공서에 홍보지라도 들고 들어가려 하면 어느 장애인 단체에서 왔느냐, 뭘 팔러 왔느냐는 말들과 정말 더 치욕적인 것은 성남시청에서 각 과를 돌며 홍보를 했는데 그중 ○○○○과에 들어갔을 때의 일인데, 들어가서 눈이 마주친 직원분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고 장애인기업에서 홍보 나왔습니다.’라고 홍보지를 내밀며 두 번 이상 말을 건넸는데, 아무 대답도 없고 쳐다보지도 않아서 황당함과 동시에 오기가 발동해서 더 크게 소리쳐 장애인기업에서 홍보 나왔습니다!!!’라고 소리를 지르다시피 했음에도 10여 명이 넘게 있던 그 공간에선 본인들끼리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이며 철저하게 무시를 당하고 나온 경험도 있었다. 물론 일부 직원분들의 이야기기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성남시가 장애인 기업에 대한 인식이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장애가 있어 사회경제적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최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점점 사회에서 소외되며 자존감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가 복지를 알기나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자신에게 계속해서 우리나라 선진국이라고 떠드는데 맞는 거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던 일이 있었다. 장애인기업은 장애인 스스로가 사회경제적 자립뿐 아니라 장애가 있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이를 통해서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에 큰 일조를 하고 있다. 장애인기업의 관리부처인 중소벤처사업부 산하 재단법인의 전 센터장님 인터뷰의 일부를 인용하면 장애인기업에 취업한 장애인의 이직률은 매우 적고, 대다수의 장애인 직원은 장기 근속을 하고 있으며, 신규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생존률이 8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말한 바 있다.

장애인기업은 그냥 장애인이 운영하는 기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일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비장애인과 견주어 자력으로 동등한 사회참여의 유일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 소외계층이 자립을 통해 세금을 내고 이로 인해 나라의 사회적 직·간접 비용을 점진적으로 줄여간다면 현재의 실효성 없는 정책보다 월등하고 꼭 필요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다.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와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장애인 단체 역시 예산에만 기대어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성남시의회에서 의석수가 많은 정당 의원들이 엄청난 상위 포식자로 굴림하는 듯 느껴질 정도다. 더군다나 장애인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 성남시의회는 장애인단체의 애로 사항을 들어줄 그 누구도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이재명 성남시장 재임 시 시장에게 반기를 들었던 장애인단체가 예산도 끊기고 단체들이 입주하고 있던 공간에서도 쫒겨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일이 성남시에서 다시 생겨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며, 정당을 떠나 모든 관련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사회경제적 소외계층을 위한 이 무엇이고, 나아가 나라를 위한 확실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Q 그동안 분당을지역에서 여러 가지 역할을 해왔는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장애인위원장으로서 지역 캠페인에 참석했다.
국민의힘 경기분당을지역위원회 장애인위원장으로서 지역 캠페인에 참석했다.

- 분당구() 저희 지역구에는 장애인분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선거운동을 하는 시즌이 되면 정말 많은 장애인분들이 저를 보고 응원을 해주시는데, 그때마다 같이 하시죠라고 말씀드리면, 한결같이 다들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국민의힘 이잖아~’ 국회의원 또는 성남시장이 바뀌면 같이 해주겠다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무슨 독재 정권도 아니고 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선출한 시장, 의원들을 눈치를 보고 두려워하지? 이 정도로 개인의 의사 표현을 언제부터 못 하게 되었는지 정말 문제가 심각의 수준을 넘어섰다.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면 성남시 관내 모 장애인 단체장님과 간만의 식사 자리에서 김영일 씨 우리 협회 부회장 좀 해주십시오. 회장인 제가 추천을 했으니 수락만 해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 주셔서 너무 감사했었다. 나는 장애인 단체에서 역할만 주어진다면야 뭐든 못하겠냐는 말씀을 드렸고 즐거운 식사 자리가 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 다시 회장님과 자리를 하게 되었는데 어쩌죠? 국민의힘 장애인위원장이라 반대가 극심하네요, 성남시와 의원들 눈치를 봐야해서...’라고 말씀하시기에 웃고 말았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우리 성남은 발전할 생각이 없나보다 생각도 들고 집권당 외에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야당의 인사들을 배제하려는 것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내가 국민의힘 분당구() 장애인위원장이 아니었으면 지금 그 단체와 일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안 했을 것 같다. 성남시의 눈치를 보고 의원들의 눈치를 보고 두려워하며 운영되는 단체라면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Q 개인적인 취미 또는 특기가 있다면 소개하라?

- 나는 장애인 휠체어 농구선수를 했었고, 수영은 성남시 대표로 전국체전에서 동메달을 딴 적도 있으며 사격, 탁구, 당구도 성남시 팀으로 출전해 지역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고 각종 스포츠, 레포츠를 많이 좋아한다.

특히 세계최초로 백두산을 등정한 것이 제 인생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인데 휠체어 장애인이 비장애인들도 험난하다는 정평이 난 루트 중 하나인 흙풍구 루트로 두 팔로 걸어서 정상까지 등정했고, 정상 50m 이후부터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루트로 휠체어에 생명줄 하나 없이 혼자서 하산한 것이 제 인생 최대의 자랑거리이다. 등정한 시기가 1995815일 광복 50주년이 되는 날이어서 남다른 뿌듯함을 간직하고 있다.

더나가 국내에서 등정한 산은 지리산 종주를 2회 했고, 설악산, 태백산, 소백산, 수락산, 북한산, 관악산, 도봉산...등등 기억이 잘 안 날 만큼 많이도 올라다녔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장애인식을 깨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참 열심히도 다녔던 기억이 있는데 세계최초라는 타이틀이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특기였던 것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장애인등반 교본을 만든 것도 기억에 많이 남는 일이었고 이렇게 생각해보니 등반이 특기인 듯하다.

취미는 나이 50이 되도록 특별히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어고, 장애인으로 그만큼 이 세상엔 해볼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인데 시간이 나면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 보듯이 록발라드 음악을 귀청 터지게 듣는 것이 작은 즐거움이다.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부르는 것도 좋아해 성남시 장애인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력도 있다.

휠체어 장애인 최초로 백두산을 등정한 것이 제 인생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휠체어 장애인 최초로 백두산을 등정한 것이 제 인생의 큰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Q 연장선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책이 있다면 무엇이고, 인생에 있어 좌우명이 있다면 무엇인가?

- 제 인생의 자우명은 호기있을 때, 친구 좋아하던 젊은 시절엔 먹고죽자() 였는데, 철들고 사업이란 것을 하고 가장이 되면서 경험에 의한 인생에 좌우명이 생겼다. 안됐을 땐 원인을 찾아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안되면 이게 왜 안되지?’라며 반복적으로 다시 시도해보고 또 해보는 그런 습성이 있듯이 나 또한 그런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한다. 그러나 그 무의식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차분하게 한 번쯤은 고민하고 차근히 원인을 찾아보면 반복적으로 시도해보는 시간보다 빨리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안됐을 땐 원인을 찾아라이다.

최근에 읽은 책은 입원중 읽었던 책으로 어깨에 중요 인대가 완전히 끊어져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지인이 병상에서 힘들고 지칠 때 읽으라고 선물해주신 책이 있다.

[제목]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 될 것이다.

[작가] 정영욱

[내용 일부 발췌]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아, 오늘도 잘 견뎌내었다. 그거면 되었다. 어떠한 힒듬인지 따지기 전에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괜찮다. 다 괜찮다...

내가 요즘 가끔 왕성하던 시절에서 시들어가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 같아 조금은 불안하고 지치고 실망하고 흐트러진 것을 보면 너무 짜증 나는 일이 잦았는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위안이 되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칭찬과 위로를 뒤로하고 앞만 보며 달려가다가 상처 입는 사람들, 자신이 하는 일에 믿음이 박하여 조바심에 어찌할 줄 모르는 사람들, 모든 것이 수평을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과 중압감에서 자신에게 조금은 들숨 날숨을 따지며 호흡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책인 것 같아 잘 읽고 조금은 여유를 찾은 것 같았다.

Q 본인이 장애당사자로서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의견이 있다면?

-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비장애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모두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순간적인 실수 혹은 사고로 비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인생이 바뀌는 삶이 나 처럼 질병으로 장애가 생기는 경우보다 현재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떤 중도장애인은 장애의 인식이 더 비장애인의 관점에서 이해심이 깊은 것도 보았고, 선천 또는 질병으로 오랜 시간 장애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모나게 인식개선을 강요하듯 요구하는 경우도 봤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공존할 때 불필요한 마찰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식개선에 대한 저의 생각은 확고하며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같이 다니시는 혹은 일을 하던 비장애인들은 가끔 깜박하고 나의 장애를 잊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유가 뭔가 물어보면 매일 보고 매일 같이 다니고 뭐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고 일관되게 말을 한다. 나는 성남시뿐 아니라 장애인들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모두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시도를 하지 않을 뿐이라 생각한다. 물론 부족한 예산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등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인식개선은 장애 당사자가 왕성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적인 참여를 할 때 인식개선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불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정치인, 경제인, 종교지도자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분야에서 함께 시작해야할 것이다. 장애인의 한 사람으로서 성남시란 도시의 재건축은 빠른 시일 내에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사회적 노력이 가장 큰 장애인식개선이라 확신한다.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성남시장에 출마한 김민수 위원장과 김영일 위원장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성남시장에 출마한 김민수 위원장과 김영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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